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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흔(土痕)의 창시자 지산 이종능 ---흙과 불의 인생 40년
  • 김영미 기자
  • 등록 2025-10-28 09: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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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흔(土痕)이란 '흙의 흔적', '세월의 느낌', '간절한 기도'를 의미
  • 창작 욕구를 자유분방하게 표현하는 도예가

도예가 지산 이종능“흙과 불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흙은 곧 사랑입니다. 그리고 불은 열정입니다. 흙과 불은 곧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요” 


한국을 대표하는 도예가 지산 이종능의 흙에 대한 철학이다. 


이종능 작가는 한국 도자기에 내재한 독특한 미의식이 ‘비대칭의 소박미’라고 말한다. 


“우리의 도자기는 균형· 조화의 절제미, 단순 소박미,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하고 아름다운 선만 살려내려는 꾸밈 없는 자세에서 우러나온 미를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친근한 아름다움이 있지요”


이 작가는 '토흔(土痕)의 창시자'라 불리기도 한다. 토흔(土痕)이란 '흙의 흔적', '세월의 느낌', '간절한 기도'를 의미하는 그만의 독창적인 흙의 세계다.


흙은 1,250도 이상의 고온에서는 회색이나 백색이 되어 원래의 색깔을 잃는 경우가 많다. 그는 흙 원래의 색깔과 질감을 지켜내며 흙이 갖는 따뜻함을 작품에 담고자 한다.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가장 자연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도자기를 만들고자 한다. 


이 작가는 특히 지금 현재 이 시대를 표현하는 도자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분청, 청자, 백자 등을 만드는 것은 영혼도 영감도 없는, 그저 복제품을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도예가가 된 계기는?


대힉 졸업 후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직업들을 백지에 모두 적어보았다. 대략 700개 정도 적은 뒤 하나씩 지워 나갔다. 마지막에 남은 게 지관과 도공이었다. 3개월 간 '잘 할 수 있는 것, 즐거울 수 있는 것,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것' 3가지에 대해 고민한 끝에 도예가를 선택했다. 


"그 때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꿈을 꾼 것 같기도 하다. 경영학을 전공한 내가 이런 선택을 한 것에 대해 지인들은 의아하게 여겼지만, 나는 줄곧 흙과 불의 인연에 감사하며 열정과 설레임을 간직한 채 살고 있다."


그는 도예를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흙과 불은 스트레스를 주는 직업이 아니라 먼 길을 함께 가는 길동무 같은 존재다.


♦일찌감치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도자기 연구를 하다


1986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 작가는 90년도에 중대한 결심을 한다. "남들이 가지 않는 나만의 길을 찾겠다"는 생각에 3년 간의 배낭여행에 나선 것이다. 


가장 감성이 풍부할 때 더 공부하고 싶어 일본, 대만, 중국, 태국, 몽고는 물론 실크로드까지 답사 했다. 북방 문화와 남방문화의 흐름을 3년 동안 체험하며 열정적으로 연구했다. 그때 3년의 시간이 훌륭한 자양분이 되어 그의 작품 세계 보폭을 넓혀 주었다. 


일본에서 도자기 수업 중 이 작가는 뜻밖의 사고로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 한 마디를 잃기도 했다. 도예가에게 생명과도 같은 손가락을...처음에는 너무나도 절망적이었지만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내 작품에는 미소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에 다시 힘을 내서 일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그는 우울할 때는 일체 작업을 안 한다. 자신의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따뜻함과 편안함, 행복감을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전시회들


이종능 작가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다. 그해 열린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의 대표 작가로 선정되어 도예 초대전을 열게 됐다.  


2002년 KBS· NHK 합작 월드컵 홍보 다큐 ‘동쪽으로의 출발’에 출연해 한국 도자기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림과 동시에 한·일 문화교류에 이바지 했다.


2004년에는 KBS 세계 도자기 다큐 6부작 ‘도자기’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들조차 궁금해 했던 도자기의 비밀을 직접 설계한 가마에서 세계 최초로 풀어내 일반 시청자는 물론 전문가들도 놀라게 했다.


2004년에는 글로벌 기업 최고 경영자 23인(블룸버거통신, AIG, 3M회장 등)의 부부 찻잔을 제작해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2007년 9월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연 <백자 달항아리 특별전>에서 자신만의 자유분방한 도예 세계로 또 한 번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2013-14년 미국 L.A와 뉴욕 전시회를 통해 많은 미술전문가, 박물관 관계자들의 흥미와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그로 인해 2015년 워싱턴 D.C 초대전을 가지게 됐다.


2015년 워싱턴DC 전시회 오프닝 날 워싱턴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의 폴 테일러 박사는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폭 넓은 작품 세계가 신선하고 유니크하다. 특히 토흔 도자기 벽화는 기존의 도자기 모습을 탈피한 새로운 시도로 이 도예가의 창의적 감각에 찬사를 보낸다”고 했다


2020년 2월에는  한·UAE 수교 40주년 기념 전시회를 아부다비에서 개최했다.


중동에서 처음 열린 지산의 도예 전시회는 도예 문화에 익숙하지 않는 중동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양국 문화· 외교에 이바지했다. 


2021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앙리 마티스 Life & Joy” 전 오마주 작가로 선정되어 도자기 벽화의 새로운 세계를 선보이며 미술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마티스라면 어떻게 흙을 만지고 작업했을까?"라 고심하며 10개월 간의 작업 끝에 탄생한 작품들. 그 가운데 흙의 원시성이 충만한 색감의 '춤II' 와 '분홍빛 누드'가 특히  호평을 받았다. 




♦새로운 생명의 파동을 보여 주는 우주시리즈 작품


‘어떤 계파나 장르에도 구애 받지 않고 자신의 창작 욕구를 자유분방하게 표현하는 도예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종능 작가. 앞으로 그의 작품에는 우주가 담길 전망이다. 


“우주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할까요! 그리고 우리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우주에 들려주고 있을까요. 수없는 영겁의 시간 속에서 인간은 늘 미지의 세계를 향한 꿈을 꾸어왔습니다.저 역시 그 설렘을 따라, 영혼의 떨림을 따라, 새로운 세계를 향한 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10월의 어느 깊은 밤 작업 중인 지산 이종능이 작가는 토흔의 질박함과 색감을 차용해 늘 동경해 왔던 우주의 신비를, 새로운 생명의 파동을 보여주는 <우주시리즈> 작품에 열정을 쏟고 있다.


1미터가 넘는 대형 설치작품인 ' The message from Mars'를 최근 선보이며 <우주시리즈>의 첫발을 내딛었다.


오늘도 도예가 이종능은 1300°C의 불길 앞에서 자신을 불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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