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교수나는 교육학자이자 대학 선생으로 오랜 시간 연구와 강의를 해 오고 있다. 인습적으로 교육학은 인문학 기반의 사회과학으로 인식되었다. 이것이 교육학자들의 존재 이유이며, 먹거리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교육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며, 학문이 아니라 실용이 되어야 마땅하다. 즉 교육은 학교 교실에서, 교과 지식을 통해, 교사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을 뛰어 넘어야 실용 교육의 가치를 논할 수 있다.
이처럼 단순한 성찰이 나로 하여금 학교 밖에서 ‘참교육’의 모습을 찾게 만드는 강력한 동인(動因)이 되었다.
10여 년 전부터 교육부 지원으로 우간다, 르완다, 베트남, 키르기스스탄, 파라과이 등에서 국제개발협력 사업에 교육전문가로 참여하고 있다. 다양한 나라, 다양한 사람, 다양한 교육들을 날 것 그대로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귀중한 시간들이 나에게 허락되었다. 책상머리에서 얻어 머릿속에 있던 교육의 이론들과 수고로운 발걸음으로 얻은 교육의 현실이 심하게 어긋나 있음을 금방 알게 되었다.
우리의 교육은 오로지 학업 성과만을 찬양하고 신뢰하는 지독한 신화(神話)에 젖어 있다. 소위 지독한 수험(受驗)교육이 신앙처럼 미화되어 왔다.
이러한 맹신 속에서 지식은 나와 무관한 객관적인 상품이고, 효과적으로 상품을 구매하는 기술(기억)을 갖춘 학생들만이 소위 우수한 대학에 가고, 좋은 대학을 나와 정글같은 직업 지위 경쟁에서 유수의 기업에 취업하는 마치 먹이사슬 같은 생태계가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교육은 가치사슬이 아니라 경쟁사슬로 변질되고, 학교 장면에서 학습주권(learning sovereign)이 아니라 학습종속을 지극히 당연시하는‘마음의 습관’에 굳은살이 박히게 되었다.
반면 국제개발협력사업의 대상은 대개 개도국이나 경제 후진국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교육과 사뭇 다른 교육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르완다 젊은이들과 함께 한 고요한 교수비록 학교시설은 열악하지만, 학생들은 입시의 고난과 전쟁에서 비켜나 있었다. 먹는 건 부족해도 배우는 일 그 자체를 즐기고, 낙후된 학교지만 등교를 기다리고, 교사를 진정으로 존경하는 교육의 본질이 여기저기 춤을 추고 있었다. 서로 어깨를 기대며 공부하고, 서로 손을 잡고 쉬는 시간을 함께한다. 먹는 것이 부족해도 즐겁게 노래하면서 고통을 참아낸다.
오로지 배우는 것이 즐겁고, 아는 것이 반갑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인간의 참모습이다(homo eruditio). 인간은 본래 배움을 좋아하고 배움을 통해 자기를 만들어 나가는 영장(靈長)이다.
산업화와 근대화는 이러한 배움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일류, 최고, 출세, 명예, 지위, 권력, 수입 등의 정치경제적 이데올로기가 그 즐거움을 짓밟았다. 배움의 즐거움을 상실한 사람은 인생의 즐거움도 동시에 잃게 된다. 공부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되고, 학교는 낙원이 아니라 교도소가 된다.
지금까지 고백한 나의 주장이 나만의 성찰에 머물지 않기 바라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오늘도 사랑스런 우리의 수많은 학생들이 학교라는 현실에서 지식이라는 연옥을 거쳐 대학이라는 낙원을 꿈꾸며 고난을 감내하고 있다. 그러나 좋은 성과만이 행복과 만족을 담보할 수 있을까? 배움의 즐거움을 상실하고 얻은 빛나는 성적표가 학생들의 아름다운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
내가 국제개발협력사업에 참여하여 얻은 교육적 성찰은 분명하다. 학교 교실만이 공부의 마당이 아니다. 교과서만이 배움의 재료가 아니다. 교사만이 가르치는 주인이 아니다.
온 세상이 학교이며, 온갖 세상 경험이 나의 지식이며, 학교 밖에서 만나는 뭇 사람들이 나의 위대한 스승들이다. 학교 안에서 영혼이 탈탈 털리고, 인성이 쪼그라드는 수험 공부에 매달리지 말고, 용감하게 학교 밖으로 걸어나가 거칠게 부딪히는 세상 경험이 진정한 배움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이를 젊은이들에게 귀뜸해 주기 위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내가 겪은 '세상 놀이 교육학'이 '책상머리 교육학'보다 위대하다.
온 세상이 학교이며, 갖가지 경험이 교사가 되는 교육으로 대(大)전환되지 않는 한, 우리의 가여운 성장 세대들은 여전히 학교-지식-교사의 통치사슬 속에서 길들여지는 존재로 아무 의심없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될 것이다.
제발 우리 학교 교육에서 ‘배움의 즐거움’을 회복하는 놀랍지만 당연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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